Technovation 2014 참가 후기


(학교 교지에 실었던 참가 후기임)


2학년이 거의 끝나가던 2013년 11월, 안산에 있는 디지털미디어고등학교의 디자인을 공부하는 여학생으로부터 같은 팀으로 대회를 출전하자는 제의를 받게 되었다. 이전에 참가했던 여러 대회들과 다르게 국제적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참가에만 의의를 두며 출전한 이 Technovation Challenge는, 예상 외로 올해 내 많은 것을 바꿔놓게 되었다.


우선 ‘지역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주제인 만큼, 아이디어를 정하는 데에 유난히 많은 신중을 가했다. 한국의 사회적인 이슈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할 뿐 아니라, 한국외의 수많은 세계인들도 그 이슈를 공감하고 이해해주어야 한다는 점까지 고려했어야했기 때문이었다. 개인정보 보안 문제부터 시작해서 치안 문제, 범죄, 환경, 성교육, 그리고 더 나아가 인종차별 문제까지. 서울, 안산, 춘천으로 서로 집이 멀리 위치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린 수 많은 온라인 회의와 오프라인 회의를 거쳐서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인들의 문제점을 찾으려고 했다. 그렇게 탄생 한 앱이 바로 ‘Rapid Receipt’이다.
종이 영수증으로 인한 자체 발암물질의 환경 파괴 문제와 쓰레기문제, 또한 연간 2700억에 달하는 비용 문제를 해결하고, 무엇보다 직접적으로 영수증을 관리하는 소비자들을 더 편리하게 만드는 법이 가능하도록, NFC를 통한 ‘전자 영수증’을 고안해내게 되었다. 근거리 통신망이라고 불리는 ‘NFC’를 활용하여, 영수증발급기계와 스마트폰을 서로 접촉시켜 종이 영수증의 발급 없이 전자 영수증으로 휴대폰에 바로 기록되고, 또한 자동으로 가계부를 작성해주며 각 항목들의 카테고리에 따른 소비패턴을 그래프로 분석해주는 일명 빠른 영수증, ‘Rapid Receipt’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2013년 11월에 첫 모임을 가진 우리는 서로 초면이었지만, 예선전이 끝나던 2014년 5월까지 반년동안 서로를 가장 가깝게 응원하고 부축했다. 각자 웹 디자인, 앱 디자인, 웹·앱 개발, 그리고 사업계획서 및 영상제작 등의 문서 업무를 맡은 친구까지, 각자 맡은 업무도, 사는 집도, 학교도 너무 달랐지만, 서로가 배려하고 노력한 탓에 큰 어려움 없이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 나에겐, 매주 진행되는 커리큘럼 및 그와 동시에 웹 페이지와 앱을 혼자서 개발해내야한다는 것이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왔었다. 항상 시간은 촉박했고, 처음 팀 결성 당시 개발파트는 2명이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개발파트의 친구가 중도 하차하는 바람에 혼자서 개발파트의 모든 것을 맡아야했다. 웹이든 앱이든 우리나라 말이 아닌 영문으로 된 결과물로 제출해야했고, 어려움이 있어 문의 메일을 보낼 때도 영어로 작성해 보내면 시차 때문에 하루가 꼬박 지나서야 다시 영어로 된 답장을 받고는 했다.


제출 당일까지 사업계획서의 맡은 부분을 작성하고, 결과물의 버그를 수정하느라 밤을 새며 완성을 했다. 반년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가 정상적으로 예선 등록이 되었다는 안내 문구와 함께 그대로 노트북을 킨 채 잠들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대회가 끝난 한 달 후인 어느 날, ‘미국 진출 Finalist 8팀 안에 들어서 축하한다’는 전화를 받게 됐다. 예선전을 진행하는 동안 결승전에 진출하는 팀은 미국으로 초청받는다는 사실조차 새까맣게 잊고 있었고, 설령 기억하고 있다고해도 그게 우리가 될거라는 생각은 한 적 없었다. 처음부터 참가 목적에 의의를 뒀었고, 다른 아이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마냥 좋았었기 때문에 내가 얻어야할 건 이미 다 얻었다고 생각했었다.


비행기를 타기 직전까지 내가 미국에 초청받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했었고, SanFrancisco 공항에 도착해서 호텔 직원이 날 마중 나오고 나서야 내가 미국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스탠포드 대학을 포함한 여러 대학들과 여러 회사들을 견학하면서, 또 스스럼없이 말을 걸며 지나가는 외국인들과 인사하면서, 정말 꿈같은 일주일을 보냈다. 영어를 잘 하지 못함에도 도리어 외국 친구들이 자신의 말을 이해시켜주려 노력했었고, 그 덕분에 소통에 어려움 없이 많은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즐겼다. 미국부터 시작해서 몰도바공화국, 브라질, 캐나다 등의 각국 친구들과 월드컵에 대해서,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가족에 대해서 웃고 떠들며 즐기는 동안 어느덧 프레젠테이션 당일이 되었다.


프레젠테이션 발표 전, Intel에서 각 팀별로 부스를 차려 앱을 시연하고 전시하는 시간을 가졌다. 일반인들부터 대회 관계자, Intel 직원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앱에 대한 설명을 귀 기울여 듣고, 감탄을 해주는 시간 속에서 제일 큰 뿌듯함을 느꼈었던 것 같다.
전시가 끝나고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Intel의 강당으로 이동했다. 미국에서 발표하는 프레젠테이션이니만큼 영어로 발표해야했고, 심사의원의 질문 또한 영어로 받고 영어로 대답해야했기 때문에, 더군다나 동양인은 수상한 적이 없었던 대회의 이력 탓에 나는 유난히 더 긴장했었다.


영어가 유창했던 다른 팀들과 달리 더듬더듬 거리며 발표를 끝마치고 무대를 내려온 우리는, 심사의원 질문에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만큼 대답하지 못했음에 무척 아쉬워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Third Place’로 우리 팀의 이름인 ‘Smarteen’이 불렸고, 우린 그저 벙쪄서 일어날 수도 없었다. 우리를 향해 박수를 치고 축하한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웃으면서 어서 무대 위로 올라오라는 사회자의 말에 그제야 주춤주춤 일어나기 시작한 우리는, 트로피를 전해 받고 무대를 내려오는 그 순간까지 벙벙한 표정으로 사진에 찍혔다.


대회 개최 이래 ‘동양인 최초 수상’이라는 타이틀 속에서, 정말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한국에 돌아왔다. 더 믿을 수 없었던 건,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 주한미군대사관측에서의 식사초청과 동시에, 숙식을 위해 호텔을 제공해 줄 테니 또래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주지 않겠냐는 제의를 제공해준 것, 또한 미국의 어떤 벤처투자자로부터 대회에 나간 앱을 투자하고 싶다는 메일을 받았고, 여러 미디어에서 소개 된 덕분에 한 스타트업에서 만나보고 싶다는 면담 요청까지 받을 수 있었다.


다른 친구들보다 내가 실력이 월등히 뛰어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난히 운이 타고난 특별한 아이도 아니다. 그저 내가 하는 일이 좋아서 여러 대회를 출전했을 뿐이고,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출전했던 이 대회에서 뜻밖의 과분한 결과를 안게 되었다.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온 나의 겉모습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지만, 대회를 진행하던 반년동안, 그리고 기적 같았던 보름 동안. 정말 많은 것을 보고, 내가 알던 것보다 더 큰 세상을 경험하고, 식견을 넓힐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미국까지 가서 ‘동양인 최초’라는 타이틀로 수상할 수 있었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또, 이 글을 보는 모든 친구들, 후배들도 들어줬으면 한다.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고,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는다면, 그 어느 누구도 이룰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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